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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술같은 마방진

마방진 뒷 이야기 15: 최석정의 마방진

지금까지 마방진 글을 쓰면서 주로 외국인의 마방진을 소개했었지요?
이번에는 우리나라 선조의 마방진입니다. 자꾸만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입니다. ㅎㅎㅎ

일단 최석정의 마방진부터 구경하고 나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지요. 

(출처: cafe.daum.net/yea504700)

(출처: www.yonsei.ac.kr)

한자로 되어 있지만 엄연한 방진입니다.
첫번째 사진은 지수귀문도(地數龜文圖)라는 특이한 형태의 마방진이고 두번째 것은 9차 마방진을 위한 기초 방진입니다.

각 마방진을 구체적으로 말하기 전에 먼저 최석정이 누구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최석정(崔錫鼎)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자 수학자입니다. 호는 명곡이며 1646년에 태어나서 1715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최석정은 30세에 진사 시험에 수석 합격하고, 그 후 부제학, 이조참판, 우의정, 좌의정, 대제학 그리고 마침내는 조선 숙종 때 영의정까지 지낸 분이기도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바로 밑의 국무총리에 해당되는 벼슬까지 오른 분이지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까지 지낸 분이라면 아주 대단한 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우리나라의 마방진 연구에 있어서 획기적인 공헌을 합니다.
위 사진은 모두 구수략(九數略)이라는 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구수략은 최석정이 지은 수학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지수귀문도
먼저 지수귀문도부터 살펴보지요.
최석정이 제시한 여러 배열도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거북이 등 모양 안에 숫자를 기입해 놓은 지수귀문도입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지수귀문도를 아라비아 숫자로 다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육각형을 벌집 모양으로 만든 뒤에 각 꼭지점에 숫자를 써 넣어 각 육각형을 이루는 6개 숫자의 합이 같도록 하는 배열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육각진이라고도 합니다.
(방진이 사각형이면, 육각진은 육각형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지수귀문도의 경우에는 1에서 30까지의 숫자를 중복됨이 없이 배열하여 거북이 등처럼 9개의 육각형들이 붙어있는 모습을 띠는데 각각의 육각형을 이루는 여섯개 꼭지점 숫자의 합을 구해보면 모두 93 이 됩니다. 이러한 모양은 가장 기초적인 6개의 숫자를 배열한 육각형 하나로 이루어진 모양에서부터 16개의 숫자를 배열한 육각형 4개, 30개의 숫자를 배열한 육각형 9개 (지수귀문도) 등 여러 모양을 만들 수 있고 배열하는 숫자의 갯수에 따라 무한히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6각형 숫자 배열로 다양한 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지수귀문도는 그 중에서 합이 93이 되는 경우에 해당되구요.
그런데 최석정이 제시한 93의 배열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합니다.
30개의 각 꼭지점을 채우는 1에서 30까지의 숫자를 6개 골라냈을 때 그 기대값이 93이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데 지용기라는 분이 지수귀문도를 보고는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을 써서 새로운 배열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지수귀문도를 확장해서 숫자의 갯수가 6, 16, 30, 48, 70, 96, 126 등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크기의 지수귀문도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이지원이라는 분이 지수귀문도를 완성하는 매우 간단하고도 명쾌한 일반 원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숫자의 배열을 바꾸어 육각형의 합이 여러 값으로 나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30개의 숫자로 배열을 만들 경우 89, 91, 95, 97 등 다양한 값으로 나타나는 배열도를 완성했습니다. 이는 합이 93이었던 최석정의 방법과는 차이가 있고 자연스럽게 배열 방식도 다르게 됩니다.

퍼즐러 갱은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아래와 같이 합이 100인 지수귀문도를 발견했습니다. 

(출처: http://agora.media.daum.net/)

이지원이라는 분이 고안 내지는 발견한 일반 원리를 퍼즐러 갱은 아직 모릅니다.
시간을 내서 좀더 공부를 한 뒤에 나중에 다시 한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2. 직교라틴방진
이제 두번째 사진에 해당하는 9차 기초 방진에 대한 것입니다.
위의 사진에 나와 있는 기초 방진은 수학적 용어로 직교 라틴 방진 (Orthogonal Latin Square) 입니다.
최석정 자신이 고안한 9차 마방진은 이미 앞서 포스팅한 '마방진 뒷 이야기 14: 라틴 마방진 (Latin Magic Square)' 글에서의 라틴 방진을 이용하여 직교 라틴 방진을 만들고 다시 이것을 활용하여 9차 마방진을 만든 것이기에 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최석정은 구수략에서 2개의 9차 마방진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구구모수변궁양도(九九母數變宮陽圖)'와 '구구모수변궁음도(九九母數變宮陰圖)' 라고 하는 직교 라틴 방진을 제시합니다. 이름 그대로 이 라틴방진을 '어머니 숫자(모수)' 로 해 각 순서쌍을 변화시키면(변궁) 마방진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라틴방진은 행이나 열에 숫자나 문자가 겹치지 않게 배열하여 만든 방진입니다. 이러한 라틴 방진을 두개 만들되 서로 다른 것을 만들고, 이것을 결합하여 겹치는 숫자나 문자가 없도록 만든 것이 직교 라틴 방진입니다.

직교라틴 방진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직교라틴 방진을 기초로 해서 마방진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 두번째 사진의 우측 페이지를 아라비아 숫자로 고쳐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됩니다.
아래 그림의 왼쪽 직교 라틴 방진의 각 셀에 있는 첫번째 파란 숫자에서 1을 뺀 뒤 9를 곱하고 이어서 빨간 숫자를 더하면 오른쪽과 같은 9차 마방진이 형성됩니다.
(다시 말해 파란 색 수를 A라 하고, 빨간 색 수를 B라 하면 (A-1)*9 + B 를 해서 나온 숫자를 적으면 됩니다.)
즉 구수략에 나타난 위 사진은 아래의 그림에서 왼쪽에 해당되며,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분리해서 생각해 보면 각각이 하나의 라틴 방진이 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라틴 방진을 한 칸에 겹쳐서 적어 하나의 방진으로 표현한 것이 직교 라틴 방진입니다. 

이렇게 해서 생성된 우측의 마방진은 1에서 81까지의 숫자를 중복없이 적어서 매직 상수가 369인 9차 마방진이 됩니다. 가로 세로 대각선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마방진이 됩니다.
그런데 이 최석정의 9차 마방진을 유심히 살펴보면 재미난 현상이 있더군요.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대각선 상의 각 셀의 숫자를 보면 37부터 시작해서 45까지 연이은 숫자가 배열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대각선 상의 각 셀의 숫자를 보면 5부터 시작해서 9를 더한 숫자가 배열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다른 재미난 현상은 가운데 행인 5행을 보면 9부터 시작해서 8을 더한 숫자가 배열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가운데 열인 5열을 보면 모두 10씩 차이가 나며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첫째자리 숫자가 모두 1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눈썰미가 있는 분들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위 9차 마방진을 9개의 3차 방진으로 구분하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그런데 그 각각의 3차 방진이 모두 마방진이 됩니다. 한번 계산을 해 보시지요.
참 신기한 9차 마방진입니다. 

여기서 구수략에 나와 있는 직교라틴 방진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구수략은 직교라틴 방진을 기록한 세계 최초의 문헌이라고 합니다.
'Handbook of Combinatorial Designs' (2판) 이라는 책에 최석정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조합론 디자인 핸드북'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네요. 이 책의 12페이지 상단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출처: http://coding.yonsei.ac.kr/page-12.jpg)

The literature on latin squares goes back at least 300 years to the monograph Koo-Soo-Ryak by Choi Seok-Jeong (1646-1715); he uses orthogonal latin squares of order 9 to construct a magic square and notes that he cannot find orthogonal latin squares of order 10.
(라틴 방진에 관한 문헌은 최소한 300년전 최석정(1646-1715)의 구수략 논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9차 직교라틴방진을 이용하여 마방진을 만들었고, 10차 직교라틴방진을 만든는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결국 이를 해석해보면 조합론의 출발점은 직교라틴방진이고 최석정의 '구수략'이 직교라틴방진을 언급한 최초의 문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707년에 태어난 스위스의 레온하르트 오일러 (Leonhard Euler, 1707~1783) 는 라틴방진을 연구하다가 두 가지 라틴방진을 겹쳐놓았을 때 각 항목이 모두 다른 경우를 '그레코-라틴방진 (Graeco-Latin Square)' 이라고 했습니다. 그뒤 수학자들은 오일러를 기리기 위해 그레코-라틴 방진을 오일러 방진 (Euler Square) 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레코-라틴 방진이나, 오일러 방진이나 직교라틴방진은 모두 같은 말입니다.

최석정의 업적이 수학사적인 관점에서 매우 훌륭하게 소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교라틴 방진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을 내어 좀더 정리해서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3. 9차 마방진
최석정의 구수략에서는 3차 마방진부터 10차 마방진까지 골고루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중 9차 마방진을 가져와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 9차 마방진 중에서 주황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3*3 방진 속에서 5와 37은 구수략 책 속에서는 위치가 바뀌어 있습니다만 이것은 오타(실수)인 것으로 간주하고 교정한 상태의 9차 마방진을 제시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래 마방진에서 다르게 색칠한 3차 마방진이 모두 마방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맨 가운데 있는 9개의 하얀색 3차 마방진만 매직 상수가 123인 마방진이 됩니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직교라틴 방진을 이용해 산출된 9차 마방진과 구분하지 않고 착각한데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퍼즐러 갱은 추측해 봅니다.
대신 9개의 3차 방진은 가로 세로 모두 합이 123이 되는 준 마방진(Semi Magic Square) 에 해당됩니다.
한번 계산을 해 보시지요.
물론 위에서 말했듯이 한 가운데 있는 하얀색 3차 마방진은 완전한 3차 마방진이구요.

참고로 구수략 책자는 아래와 같이 생겼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완연하군요.

(출처: Naver 지식 백과)

구수략 책자 표지를 넘긴 뒤의 첫장입니다. 구수략은 갑을병정의 4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 사진은 정(丁)편으로서 부록에 해당되는군요.

(출처: http://blog.naver.com/rjaajdgjs?Redirect=Log&logNo=80165400902)


(참조한 내용)
월간 과학동아 2008년 8월호 기사 '오일러 앞지른 최석정; 직교라틴방진 기록한 최초의 문헌 구수략'
월간 과학동아 1999년 7월호 기사 '수학사의 미스테리 마방진; 숫자속에 숨겨진 우주의 질서'

오늘도 해피 퍼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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